"석어당 바로 앞에도 계단이 있지만 못 올라가서 돌아가야 해요."

권명옥씨(56)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서울 덕수궁을 찾았다. 대구에 사는 모녀의 서울 나들이는 순탄치 않았다. 해설사가 이끄는 관광객들을 따라다니기가 버거워 자세한 설명은 빼먹기 일쑤였다.

같은 날 휠체어를 타고 덕수궁 관람에 나선 기자 역시 모녀처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시청역에서 빠져나오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역 출구는 1번부터 12번까지 있었으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2번과 9번 출구였다. 2번 출구는 계단 탓에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없었다.

9번 출구는 덕수궁에서 가장 먼 곳이다. 지도앱에선 도보로 7분이 걸린다고 했지만 휠체어를 끌고 가보니 2배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인도마다 경사가 다르고 도로파임 등으로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덕수궁에 도착하기 전부터 손이 아팠다.

힘겹게 덕수궁에 도착하자마자 또다른 어려움에 부닥쳤다. 창구 앞 5m도 안되는 짧은 경사로의 경사가 심했다. 휠체어 바퀴를 힘차게 굴려도 조금 올라갔다 미끄러져 버렸다. 여러 차례 반복하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양옆에 달린 봉 한쪽을 양손으로 잡고 줄을 당기듯 시도하다 한 시민의 도움으로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궁 내부에서는 시야가 문제였다. 휠체어에 앉았을 때 눈높이로는 주요 건축물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다. 특히 함녕전 문턱 너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없었다. 억지로 고개와 허리를 세워도 마찬가지였다. 비이동약자의 시선으로 천장에선 화려한 단청문양이, 바닥에서는 왕의 이동식 의자인 '용교의'가 보이는 곳이지만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길이 울퉁불퉁하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흙길에 휠체어를 끌고 다니다 보니 땅이 파인 곳에 빠지기 일쑤였다. 바퀴가 헛돌아 자리를 맴돌았고 벗어나기 어려웠다. 특히 덕수궁 중심에 있는 중화전 돌길은 5㎜부터 길면 10㎝의 불규칙한 간격으로 돌이 배치됐다. 이를 지나가려 했으나 위아래로 휠체어가 심하게 들썩거렸다. 온몸에 느껴지는 진동감에 중화전 앞 관람은 포기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기자를 걱정했다. 기자의 휠체어를 밀어준 에우제니오 바르잔티씨(29)는 "(덕수궁 내 이동약자 시설에) 10점 만점에 6점을 주고 싶다"며 "경사로가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나머지는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 돌계단을 가리키며 "경사로가 제한돼 이동약자가 건축물 내부를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의 휠체어를 타본 한 시민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시설관계자가 없으면) 혼자 다니지도 못하고 누구랑 꼭 같이 다녀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날 관람을 마친 기자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식사를 위해 젓가락을 집을 수 없을 정도였다. 휠체어를 탄 2시간30분 내내 손과 팔에 힘을 준 탓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궁능유적본부는 2026년까지 덕수궁 등 서울 4대 궁궐을 무장애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목표시점까지 1년 정도 남았다. 관계자는 "앞으로 예산과 시설상황 등을 확인해 무장애 시설조성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동권뿐 아니라 제대로 관람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란수 미래관광전략연구소장은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장애인들도 보기 편한 시설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포토존 등 비장애인들처럼 살짝 올라가 관람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김지현 기자 mtjen@mt.co.kr